타르치시오 부르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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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르치시오 부르니치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했다. 그는 1959년 우디네세를 시작으로 유벤투스,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하여 1974년까지 활약하며 5번의 세리에 A 우승, 2번의 유러피언컵 우승, 2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을 경험했다. 1974년 나폴리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70년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감독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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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치시오 부르니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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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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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타르치시오 부르니치 |
출생일 | 1939년 4월 25일 |
출생지 | 루다, 이탈리아 |
사망일 | 2021년 5월 26일 |
사망지 | 포르테 데이 마르미, 이탈리아 |
신장 | 1.75m |
포지션 | 수비수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우디네세 |
클럽 | 우디네세 (1958–1960): 8경기 0골 유벤투스 (1960–1961): 13경기 0골 팔레르모 (1961–1962): 31경기 1골 인테르 밀란 (1962–1974): 358경기 5골 나폴리 (1974–1977): 84경기 0골 |
국가대표 | 이탈리아 (1963–1974): 66경기 2골 |
총 출장/골 | 494경기 6골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 연도 | 1963–1974 |
국가대표팀 | 이탈리아 |
국가대표 출장/골 | 66/2 |
감독 경력 | |
감독 연도 | 1978–1980: 리보르노 1980–1981: 카탄차로 1981–1982: 볼로냐 1982–1984: 코모 1984–1986: 제노아 1986–1987: 비첸차 1987–1988: 코모 1988–1989: 카탄차로 1989–1991: 크레모네세 1991–1992: 살레르니타나 1995–1997: 포자 1997–1998: 제노아 1998–1999: 루케세 1999–2000: 테르나나 2000–2001: 페스카라 |
수상 내역 | |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 우승 (1968년 이탈리아) |
FIFA 월드컵 | 준우승 (1970년 멕시코) |
2. 클럽 경력
부르니치는 고향 인근의 우디네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59년 6월 2일 밀란을 상대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31][32][33][34]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1960-61 시즌 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했다.[31][32][33][34]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그는 1960년대 클럽의 전성기,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 시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12년간 세리에 A 5회, 유러피언컵 2회, 인터콘티넨털컵 2회 등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31][32][33][34][35] 강인하고 빠르며 다재다능한 수비수였던 그는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강력한 측면 수비를 구축했으며,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빗장''(catenaccio) 전술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했다.[35] 인테르 소속으로 총 467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35]
1974년, 부르니치는 나폴리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의 마지막 3년을 보냈다.[31][32][33] 나폴리에서는 루이스 비니시우 감독 아래 스위퍼로 활약하며 1976년 코파 이탈리아와 코파 디 레가 이탈로-잉글레세 우승에 기여했다.[31][33][34] 1977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세리에 A 통산 494경기에 출전했다.[31][33][34]
2. 1. 초기 경력
부르니치는 고향 인근의 우디네세 소속으로 1958년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959년 6월 2일, 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31][32][33][34] 프리울리 연고 구단에서 잠시 활약한 후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1960-61 시즌 리그 우승을 경험하였다. 이후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하며 선수 경력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31][32][33][34]2. 2. 유벤투스
부르니치는 고향 인근의 우디네세에서 잠깐 활약한 후 유벤투스로 이적했다.[31][32][33][34] 그는 유벤투스 소속으로 1960-6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했다.[31][32][33][34] 이후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했다.[31][32][33][34]2. 3. 팔레르모
부르니치는 유벤투스에서 1960-6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경험한 후,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했다.[31][32][33][34]2. 4. 인테르나치오날레
1962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하여 1960년대 전성기를 열었다.[31][32][33][34]강인하고 빠르며 활력이 넘치는 선수로,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강력한 측면 수비 조합을 이루며 인테르나치오날레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양쪽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35] 그는 ''흑청 군단''(nerazzurri) 소속으로 467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35] 부르니치의 강인함과 끈질긴 경기 방식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이 이끌던 인테르나치오날레 황금기의 강력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특징으로 하는 ''빗장''(catenaccio) 전술에 매우 적합했다.[35]
인테르나치오날레 소속으로 세리에 A 5회, 유러피언컵 2회, 인터콘티넨털컵 2회를 우승하며 국내외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31][32][33][34] 그는 1960년대 전설적인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31][32][33][34]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2시즌을 보낸 후,[31][32][33] 1974년 나폴리로 이적했다.
2. 5. 나폴리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12년을 보낸 후,[31][32][33] 부르니치는 1974년 나폴리로 이적했다. 당시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새로운 회장이었던 프라이촐리가 팀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이적이었기에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31][33][34] 부르니치는 나폴리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3년을 보냈는데, 루이스 비니시우 감독의 지휘 아래 최후방 수비수 역할을 수행했다.[31][33][34] 그는 나폴리 소속으로 1976년 코파 이탈리아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같은 해 코파 디 레가 이탈로-잉글레세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31][33][34] 1977년 현역에서 은퇴했으며, 선수 경력 전체를 통틀어 세리에 A에서 총 494경기에 출전했다.[31][33][34]3. 국가대표팀 경력
부르니치는 10년 넘게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로마에서 열린 1960년 하계 올림픽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하여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36][9] 1963년 11월 10일, 소련과의 1-1로 비긴 홈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31][33][38] 이후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아 등번호 2번을 달고 활약했으며, 이탈리아가 자국에서 개최한 UEFA 유로 1968에서 사상 첫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31][33][38]
부르니치는 FIFA 월드컵에도 세 차례(1966년, 1970년, 1974년) 참가했다.[31][33][38][4][6][11] 특히 197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으나,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31][33][38] 그는 이 대회 준결승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31][33][38][37][10]
그는 1963년부터 1974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총 66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기록했다.[31][33][38][4][6][11]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였던 펠레와의 일화는 유명하다.[30][39][3][12][27]
3. 1. FIFA 월드컵
부르니치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세 차례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다.그는 1966년 FIFA 월드컵에 이탈리아 선수단의 일원으로 처음 참가했다.[31][33][38] 1970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의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며 팀의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특히 "세기의 경기"로 불리는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서는 연장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4-3 승리를 이끌었다.[31][33][38][37]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브라질에 1-4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31][33][38] 이 경기에서 부르니치는 브라질의 펠레를 전담 마크했으나, 펠레의 유명한 헤딩골을 막지 못했다.[30][39] 훗날 부르니치는 당시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 "저는 '그도 살과 뼈로 이루어진 한 사람일 뿐이야'라고 경기 전에 혼잣말을 했습니다만, 제가 오판했습니다."[40][27]
: "공이 접근했을 때 우리 둘 모두 최대한 높이 도약했습니다. 제가 본래 뛰었던 땅에 다시 착지했을때에도 펠레는 늘 그랬듯이 활공하고 있었고, 골을 넣었습니다."[41]

부르니치는 1974년 FIFA 월드컵에도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하며 자신의 세 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4][6][11]
4. 은퇴 후
은퇴 후 1978년 리보르노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감독 경력을 시작했다. 약 20년 동안 감독으로 활동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가 지휘봉을 잡았던 팀으로는 카탄차로, 볼로냐, 코모, 리보르노, 포자, 루케세, 크레모네세, 제노아, 테르나나, 비첸차 등이 있다.[31][4]
2021년 5월 26일, 포르테데이마르미의 성 카밀로 병원에서 향년 82세의 나이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42][43][15][16]
5. 경기 스타일
강인하고, 몸집이 크며, 빠르고, 활력이 넘치는 부르니치는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30][31][32][33][34][35][44][45] 그는 공중 경합 능력, 뛰어난 신체 조건, 꾸준함, 그리고 호전적이면서도 신사적인 성향과 효율적인 경기 방식으로 인해 키가 특별히 크지 않았음에도 '바위'(La Roccia|라 로차ita)라는 별명을 얻었다.[3][4][5][6][7][8][17][18]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지능적이며 근면한 선수로, 여러 수비 역할을 소화하며 공수 양면에서 팀에 기여했다.
5. 1. 다재다능한 수비수
강인하고, 몸집이 크며, 빠르고, 활력이 넘치는 부르니치는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30][31][32][33][34][35][44][45] 그는 공중 경합 능력, 뛰어난 신체 조건, 꾸준함, 그리고 호전적이면서도 신사적인 성향, 효율적인 경기 방식으로 인해 키가 특별히 크지 않았음에도 '바위'(La Rocciaita)라는 별명을 얻었다.[3][4][5][6][7][8][17][18]초창기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그는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지능적이며 근면한 선수로, 공수 양면에서 팀을 돕는 데 능숙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여러 수비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던 그는 현역 시절 대인 방어에 능한 중앙 수비수(혹은 "스토퍼")나 최후방 수비수(특히 선수 생활 말년에 이 역할을 자주 맡았다)로 뛰었으며, 주로 우측 수비수 혹은 윙백을 담당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그의 주력, 체력, 체격 조건, 그리고 끈기는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빗장 수비 체제에 이상적으로 적합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그는 보다 공격적이었던 좌측 수비수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인테르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측면 수비 조합 중 하나를 구축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부르니치는 파케티만큼 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데 능숙하지 않았고, 인테르 시절에는 전방으로 덜 전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보다 수비적이었던 부르니치는 대인 방어와 거친 견제에 능해 1대1로 제치기 매우 어려운 "구식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그는 절제하는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집중력, 지도자적 역량, 그리고 경기장 안팎에서의 자제력을 선보였으며, 예측력과 반응 속도로도 알려져 있었다.[30][31][32][33][34][35][44][45][3][4][5][6][7][8][17][18] 또한 수비수로서의 노련함과 조직력에서의 강점, 그리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으로도 유명했다.[31][46][47][4][19][20] 나폴리에서 보낸 선수 생활 말년에는 루이스 비니시오 감독의 지역 방어 시스템 아래에서 공격적인 최후방 수비수나 중앙 수비수로 뛰며 수비 임무 외에도 미드필드로 전진하여 공격의 시작점이 되고 팀의 공격에 기여하는 역할도 수행했다.[31][46][47][4][19][20]
5. 2. 수비의 핵심
강인하고, 몸집이 크며, 빠르고, 활력이 넘치는 부르니치는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30][31][32][33][34][35][44][45] 그는 뛰어난 공중 경합 능력, 위협적인 신체 조건, 꾸준함, 그리고 호전적이면서도 신사적인 성향과 효율적인 경기 방식으로 인해 키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바위''(La Roccia)라는 별명을 얻었다.[3][4][5][6][7][8][17][18]초창기 공격형이나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했던 그는 전술적으로 다재다능하고 지능적이며 근면한 선수로, 공수 양면에서 팀에 기여했다.[30][31][32][33][34][35][44][45] [3][4][5][6][7][8][17][18] 여러 수비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으며, 현역 시절 대인 방어에 능한 중앙 수비수(혹은 "저지자")나 최후방 수비수(특히 선수 생활 말년에 자주 맡았다)로 뛰었다. 주로 우측 수비수 혹은 안쪽 측면 수비를 맡아 그의 주력, 체력, 체격 조건, 그리고 끈질김을 앞세워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카테나치오' 시스템에 이상적으로 부합했다.[30][31][32][33][34][35][44][45] [3][4][5][6][7][8][17][18]
그는 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좌측 수비수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측면 수비 조합 중 하나를 구축했다.[30][31][32][33][34][35][44][45] [3][4][5][6][7][8][17][18] 파케티에 비해 후방에서 공격을 전개하는 능력은 부족했고 인테르 시절 전방으로 나서는 빈도도 적었지만, 수비에 더 치중했던 부르니치는 뛰어난 대인 방어 능력과 거친 견제를 통해 상대방이 1대1로 제치기 매우 어려운 "구식 수비수"로 평가받았다.[30][31][32][33][34][35][44][45] [3][4][5][6][7][8][17][18]
이러한 수비 능력 외에도 그는 침착함, 리더십, 경기장 안팎에서의 규율 준수, 뛰어난 예측력과 반응 속도로도 알려져 있었다.[30][31][32][33][34][35][44][45] [3][4][5][6][7][8][17][18] 수비수로서의 노련함과 조직력, 오프사이드 트랩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나폴리에서 보낸 선수 생활 말년에는 루이스 비니시오 감독의 지역 방어 시스템 하에서 공격적인 최후방 수비수나 중앙 수비수로 활약하며, 수비 임무 외에도 미드필드로 전진하여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거나 팀의 공격에 직접 기여하기도 했다.[31][46][47] [4][19][20]
6. 경력 통계
타르치시오 부르니치의 선수 시절 경력 통계는 다음과 같다. 그는 우디네세, 유벤투스, 팔레르모, 인테르나치오날레, 나폴리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하며 세리에 A 통산 494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이탈리아 대표팀 소속으로는 총 61경기에 출전하여 2골을 넣었다.
자세한 클럽별, 시즌별 출장 및 득점 기록과 국가대표팀에서의 득점 기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1. 클럽
부르니치는 고향팀인 우디네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59년 6월 2일 밀란과의 원정 경기에서 7-0으로 패하며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48] 우디네세에서 짧은 기간을 보낸 후 유벤투스 (1960–61 시즌 세리에 A 우승)와 팔레르모를 거쳐, 1962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입단하며 1960년대 그의 축구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했다.강하고, 빠르며, 활동량이 많고 다재다능한 수비수였던 그는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인테르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자친토 파케티와 함께 강력한 풀백 라인을 구축했다. 그는 '네라주리'(인테르의 애칭) 소속으로 467경기에 출전하여 6골을 기록했다. 그의 강인하고 끈기 있는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 인테르의 감독이었던 엘레니오 에레라가 구사한 '카테나치오' 전술 시스템에 완벽하게 부합했는데, 이 시스템은 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빠른 역습을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인테르에서 부르니치는 5번의 세리에 A 우승, 2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 그리고 2번의 인터컨티넨탈 컵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유럽, 그리고 세계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오늘날까지 '그란데 인테르'로 회자되는 1960년대 전설적인 인테르 선수단의 핵심 멤버였다.
인테르에서 12시즌을 보낸 후, 1974년 인테르의 새로운 회장 프라졸리가 팀 개편을 단행하면서 그는 나폴리로 이적하게 되었다. 부르니치는 나폴리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 3시즌을 보냈으며, 루이스 비니시오 감독의 팀에서 스위퍼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나폴리 소속으로 1976년 코파 이탈리아와 앵글로-이탈리안 리그 컵에서 우승한 후 1977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는 선수 경력 동안 세리에 A에서 총 494경기에 출전했다.
구단 | 시즌 | 세리에 A | 코파 이탈리아 | 유럽 대회 | 기타 대회 | 합계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우디네세 | 1958–59 | 1 | 0 | – | – | 1 | 0 | ||||||||||
1959–60 | 7 | 0 | – | – | 7 | 0 | |||||||||||
합계 | 8 | 0 | 0 | 0 | 0 | 0 | 0 | 0 | 8 | 0 | |||||||
유벤투스 | 1960–61 | 13 | 0 | 13 | 0 | ||||||||||||
팔레르모 | 1961–62 | 31 | 1 | 31 | 1 | ||||||||||||
인테르나치오날레 | 1962–63 | 31 | 0 | 31 | 0 | ||||||||||||
1963–64 | 33 | 0 | 33 | 0 | |||||||||||||
1964–65 | 32 | 1 | 32 | 1 | |||||||||||||
1965–66 | 30 | 0 | 30 | 0 | |||||||||||||
1966–67 | 30 | 2 | 30 | 2 | |||||||||||||
1967–68 | 30 | 0 | 30 | 0 | |||||||||||||
1968–69 | 30 | 1 | 30 | 1 | |||||||||||||
1969–70 | 26 | 1 | 26 | 1 | |||||||||||||
1970–71 | 29 | 0 | 29 | 0 | |||||||||||||
1971–72 | 27 | 0 | 27 | 0 | |||||||||||||
1972–73 | 30 | 0 | 30 | 0 | |||||||||||||
1973–74 | 30 | 0 | 30 | 0 | |||||||||||||
합계 | 358 | 5 | 0 | 0 | 0 | 0 | 0 | 0 | 358 | 5 | |||||||
나폴리 | 1974–75 | 30 | 0 | 30 | 0 | ||||||||||||
1975–76 | 30 | 0 | 30 | 0 | |||||||||||||
1976–77 | 24 | 0 | 24 | 0 | |||||||||||||
합계 | 84 | 0 | 0 | 0 | 0 | 0 | 0 | 0 | 84 | 0 | |||||||
경력 합계 | 494 | 6 | 0 | 0 | 0 | 0 | 0 | 0 | 494 | 6 |
6. 2.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아래의 점수에서 왼쪽의 점수가 이탈리아의 득점이며, 득점 열은 부르니치의 득점 상황의 점수를 나타낸다''.[29]# | 날짜 | 장소 | 상대 | 점수 | 최종결과 | 대회 |
---|---|---|---|---|---|---|
1 | 1966년 6월 18일 | 밀라노 산 시로 | 오스트리아 | 1–0 | 1–0 | 친선경기 |
2 | 1970년 6월 17일 | 멕시코시티 아스테카 | 서독 | 2–2 | 4–3 (연장전) | 1970년 월드컵 준결승전 |
7. 수상 내역
;나폴리[31][4]
- 앵글로-이탈리안컵: 1976
- 코파 이탈리아: 1975–76
;유벤투스[31][4]
;이탈리아[31][4]
;개인
참조
[1]
웹사이트
Tarcisio Burgn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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